데이터 낙후·인재 장벽·투자기피…한국 인공지능의 3敵

[매일경제] 데이터 낙후·인재 장벽·투자기피…한국 인공지능의 3敵(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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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상균 비피유홀딩스 대표(오른쪽)와 이 회사의 엔지니어가 스스로 감정을 표출하는 인공지능을 시연하고 있다. 스크린에 떠 있는 화면에 행복하다(Happy), 슬프다(Sad) 등의 감정이 표시돼 있다. [이승환 기자]

인공지능 기술이 선진국보다 뒤처져 있다는 좌절감이 팽배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언제 그들과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 적이 있었나요?” 국내 대기업에서 인공지능 개발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임원 A씨 얘기다. 세상은 곧 구글과 아마존이 뒤바꿔 놓을 것 같은데, 이제 초보 기술로 뭘 하겠느냐는 자조의 목소리도 많다. 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는 다르다. 국내외 인공지능 실무자들은 한국이 데이터, 인재, 금융 등 3대 걸림돌을 해결하면 이 분야에서 앞서나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강한 제조업 기반이 있고, 교육열이 충만한 데다 인공지능에 필수적인 모바일·인터넷 인프라가 있다. 아직 ‘시장 선도자(퍼스트 무버)’를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빠른 추격자(패스트 폴로어)’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한 맞춤형 교육업체 키드앱티브를 창업한 P J 건사가 씨는 “한국은 인공지능에 기반한 개인학습 혁명이 이뤄질 수 있는 최전선이라고 확신한다”며 “인터넷 보급률, 학부모들 교육열 등이 그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이 같은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서울에다 아시아본부까지 차렸다. 롭 하이 IBM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한국에는 특별한 이점이 있다”며 “강한 제조업 기반은 인공지능 발전에 큰 레버리지”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을 도입해 제조업에 결부해 볼 수 있는 실험장이 많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인터넷 환경이 좋기 때문에 클라우드 인프라가 훌륭하고, 각종 도시문제들을 인공지능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낫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들을 대체해 가고 있는 금융 인공지능 기업 켄쇼의 최현영 대표는 “미국에서 사업하는 데는 미국만의 어려움이 있다”며 “어디에서나 (인공지능 비즈니스의) 기회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물론 한국은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이 있다. 무엇보다 열악한 데이터 이용환경을 개선하는 게 시급하다. 임원 A씨는 “인공지능을 활용하기 위한 기초적 데이터 인프라를 정부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현재 인공지능은 대부분 인터넷상에 올라와 있는 데이터들을 기초로 귀납적 판단을 하고 있다. 그런데 흔히 사용되는 위키피디아 데이터 표제수를 기준으로 하면 영어가 530만8000개인 데 반해 한국어는 36만7000개에 불과하다. 영어가 10배 이상 더 많다. 미국 영국 등 영어권 인공지능이 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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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이런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도 부족하다. A씨는 “정부가 공개한 데이터들을 보면 PDF파일 형식으로 돼 있어 인공지능이 학습하기 어렵거나 시간과 비용이 소모될 수밖에 없는 상태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가 데이터센터를 만들 것이 아니라 정보를 공개하는 표준을 정하고 공통된 기준만 마련해 줘도 인공지능 학습이 급속도로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인터넷진흥원에 따르면 국내 빅데이터 활용기업 비율은 전체(100인 이상 사업장)의 4.3%에 그친다. 글로벌 평균인 29%에 비하면 한참 뒤처지는 수준이다. 음성인식 인공지능 기업 솔트룩스의 이경일 대표는 “인공지능은 데이터, 자본, 시설, 인력이 대규모로 투입돼야 하는 장치산업”이라고 지적했다.

인공지능 기업에 들어올 인력 문제는 한국이 인공지능 강국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다. 감정 기반 인공지능 기업 비피유홀딩스의 오상균 대표는 최근 해외에서 우수한 인공지능 엔지니어를 한국에 데려오려다 황당한 일을 당했다. 한국에서 취업비자를 받으려면 대학 졸업장이 없을 경우 안 된다는 규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해외 엔지니어 중에는 대학을 중퇴하거나, 심지어는 홈스쿨링 등을 통해 학습한 이들도 많다. 결국 이 기업이 해당 엔지니어를 데려오려면 해외에서 대학을 보내 졸업시켜야 하는 형편이다. 오 대표는 “국적을 불문하고 기초적 컴퓨터 엔지니어링 실력만 갖추고 있으면 훌륭한 인공지능 엔지니어가 될 수 있다”며 “하지만 기술보다 열정과 가치를 가진 인재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외국계 기업 관계자는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이민제한 정책 후폭풍보다 더 심한 일이 한국에도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경일 대표는 “한국에도 유능한 인공지능 업체가 많다”며 “그러나 학계는 물론 정부, 대기업 등이 이들과 함께 협력하는 생태계가 부족하다”고 했다.

스타트업에 대한 벤처캐피털의 투자 환경도 걸림돌이다. 이는 비단 인공지능뿐만 아니라 모든 스타트업들이 가진 공통 문제이기도 하다. 한 중소 인공지능 업체의 대표는 “투자를 받을 때는 비즈니스 모델이 뚜렷한지 가장 먼저 물어보고, 매우 확실한 수준의 수익성을 요구한다”며 “하지만 그런 모델이 갖춰져 있다면 굳이 투자를 원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리스크가 있는 사업이라면 그 리스크를 함께 안고 갈 수 있는 벤처 투자의 구조적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특별취재팀 = 신현규 차장(팀장) / 임성현 기자 / 김대기 기자 / 원호섭 기자 / 박은진 기자 / 김연주 기자]